본문 바로가기
2. 책과 영화, 문화생활에 대하여

[도서리뷰] 우리 마음은 늘 우리 저 너머로 쓸려간다(미셸 드 몽테뉴)

by 리리뷰어 2023. 11. 4.

에쎄! 에세이의 조상님을 만나는 시간

 

 '우리 마음은 늘 우리 저 너머로 쓸려 간다.'

 

 제가 올해 세웠던 목표 중 하나는 '소설'이 아닌 책을 12권 읽는 것입니다. 연초 출판사 북클럽을 신청할 때 평소와 달리 소설이 아닌 책들을 몇 권 골랐던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였습니다. '우리 마음은 늘 우리 저 너머로 쓸려 간다'는 그 중 한 권으로 민음북클럽의 올해 특전 도서입니다. 읽기 전엔 잘 몰랐는데 이 도서는 책의 전문이 아니라 일부를 선정하여 큐레이션한 도서였습니다. 에세이의 원형이 되는 고전 도서, '에쎄'의 내용 일부를 발췌하여 엮은 책이었습니다.

 

 '에쎄'의 저자인 미셸 드 몽테뉴는 프랑스의 철학자(?)입니다. 부유층 지식인이자 작가였으며, 오늘날은 에세이의 조상님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저자가 철학자여서 그런지 이 책, 처음에는 도대체 이게 무슨 이야기인가 싶습니다. 하지만 찬찬히 곱씹어 읽다 보면 저자의 생각과 품성에 매력을 느끼고, 수백년 전 책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생각들에 깊은 공감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의 마음은 어디로 쓸려가고 있는 것인지, 책을 다시 한 번 살펴 보겠습니다.

 


1. 도서 및 저자 정보

 

 앞서 말씀드렸듯, 이 책의 저자인 '미셸 드 몽테뉴'는 프랑스의 철학자입니다. 철학자라고 표기하긴 하였으나, 실제로 어떤 연구를 했던 사상가였던 것은 아니고 두루뭉실한 범주 안에서의 사상가이며 철학자입니다. 무려 지금으로부터 490년 전인 1533년에 태어난 옛날 사람이기도 합니다.

 

몽테뉴를 정식 철학자라고 하기 애매한 것은 그가 본격적으로 사상이나 철학을 연구하고 발표한 학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부유한 상인 집안에서 태어나 유복하게 자란 몽테뉴는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였고 이후에는 법관으로 활동하였습니다. 하지만 사회 생활이 별로였던 것인지, 혹은 다른 뜻이 있었던 것인지 아직 30대였던 1571년에 법관직을 사퇴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글쓰기에 몰두하기 시작합니다. 물려받은 재산도 많아 은퇴 후로는 쭉 놀고 먹으며 글을 쓰는 삶을 살았다고 하니 부러움 그 자체입니다... 몽테뉴는 읽고 싶은 책을 읽고 쓰고 싶은 글을 쓰며 자연스럽게 본인의 철학과 생각을 저술하였으며, 저술 속에서 사람에 대한 따뜻한 관심과 자신의 사상을 펼쳐내 보입니다. 몽테뉴가 두루뭉술하게 사상이자 철학자로 표현되는 것은 이처럼 열심히 쓰인 그의 저술이 널리 읽혔고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았으며 또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저기 검색을 통해 확인하실 수 있는 몽테뉴의 대표작은 바로 '수상록' 입니다. 놀랍게도 유일한 저서이기도 합니다. 낯선 이름인 것 같지만, 이것이 바로 제가 읽은 책 에세(혹은 에쎄) 입니다. 수상록은 그냥 동양식으로 붙인 이름입니다. '에세'는 프랑스 원문으로는 'Les Essais'라고 쓰는데, 프랑스 단어 Essai는 '시도하다, 시험하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어로는 TEST라고 보시면 됩니다. (구글 번역기를 돌리면 TEST라고 나오니 믿으셔도 되겠네요!). 수상록은 무슨 뜻인가 하고 보니 '그 때 그 때 떠오르는 느낌이나 생각을 적은 글'이라고 합니다. 따를 수, 생각할 상, 기록할 록 자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쯤되면 느낌이 오셨겠지만 미셸 드 몽테뉴의 수상록, '에쎄(에쎄)'는 바로 1500년대의 브런치(https://brunch.co.kr/)라고 보아도 무방하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사용하고 있는 글쓰기 플랫폼 브런치는 누구나 자유롭게 특정 주제에 대한 본인의 경험, 생각, 지식, 감정을 나눌 수 있는 플랫폼입니다. 오늘날 글쓰기 좋아하시는 분들이 개인 블로그나 브런치에 자유롭게 글을 쓰듯, 그 시절 옛날 사람인 미셸 드 몽테뉴는 종이에 글을 쓰고 책으로도 출간해보았던 것입니다. 심지어는 20년동안 연재를 했습니다. 원래 출간할 생각이 아니었는데 어쩌다보니 책이 된  것인지 글에다 '내 글이 책으로 팔리고 있다니!' 라거나 '주위 사람들이 안 믿는다!' 비슷한 뉘앙스의 말들을 써 놓았고, 막상 글을 책으로 내고 나니 좋았는지 버전에 따라 이러 저러한 수정의 말들도 덧붙여 놓았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니 몇 백 년 전 옛날 사람에 대한 심리적 거리가 확 줄어들며, 이 사람의 이렇게 브런치가 수백년 동안 고전으로 잘 팔리고 있는 인기 비결이 무엇인지 궁금한 마음이 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2. 주요 내용 및 리뷰

 

  저는 아직 큐레이션된 일부 발췌본밖에 읽지 못했지만, 에세의 패턴은 다음과 같습니다.

 

 - 몽테뉴가 관심있는 하나의 주제가 선정됩니다.

 - 거기에 대한 본인의 고찰 내용, 관련한 경험과 생각들을 주르륵 써 내려갑니다.

 

 이런 식으로 저술된 몽테뉴의 에쎄는 전체 3권, 모두 107가지의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1권이 57장, 2권이 37장, 3권이 13장으로 전체 내용을 다 합치면 분량이 어마어마합니다. 민음 북클럽을 통해 에세를 처음 접하게 되었으니, 민음사에서 출간된 에세의 목차를 옮겨보겠습니다.

 

[에세 1]

 

옮긴이의 말 [005]

서문: 독자에게 [035]

 

1장 우리는 다양한 방법으로 비슷한 결말에 이른다 [039]

2장 슬픔에 관하여 [045]

3장 우리 마음은 늘 우리 저 너머로 쓸려 간다 [052]

4장 정념의 진짜 대상을 놓쳤을 때, 영혼은 어떻게 그 정념을 엉뚱한 곳에 풀어놓는가 [064]

5장 포위된 곳의 우두머리가 협상을 위해 성 밖으로 나서야 하는지에 관하여 [068]

6장 협상할 때가 위험하다 [073]

7장 우리 행동은 의도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 [077]

8장 무위(無爲)에 관하여 [080]

9장 거짓말쟁이들에 관하여 [083]

10장 재빨리 또는 굼뜨게 말하는 것에 관하여 [092]

11장 예언에 관하여 [096]

12장 의연함에 관하여 [103]

13장 왕끼리 회동하는 의식에 관하여 [107]

14장 좋고 나쁜 것은 우리 견해에 달려 있다 [110]

15장 요새를 사수하려 분별없이 집착하면 처벌당한다 [140]

16장 비겁함에 대한 벌에 관하여 [142]

17장 몇몇 대사의 특징 [145]

18장 공포에 관하여 [150]

19장 우리 행복은 죽은 뒤에나 판단해야 한다 [155]

20장 철학을 한다는 것은 죽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160]

21장 상상의 힘에 관하여 [189]

22장 한 사람의 이익은 다른 이의 손해이다 [207]

23장 습관에 대해, 그리고 기존의 법을 쉽게 바꾸지 않는 것에 관하여 [209]

24장 같은 계획의 다양한 결과들 [236]

25장 현학에 관하여 [251]

26장 아이들의 교육에 관하여 [271]

27장 우리 능력으로 진실과 허위를 가리는 것은 미친 짓이다 [328]

28장 우정에 관하여 [335]

29장 에티엔 드 라 보에시의 소네트 스물아홉 편 [356]

30장 중용에 관하여 [358]

31장 식인종에 관하여 [366]

32장 신의 뜻을 함부로 판단하려 들지 마라 [388]

33장 목숨 바쳐 속세의 쾌락을 피하다 [392]

34장 운수는 가끔 이성과 보조를 맞춘다 [395]

35장 우리네 살림살이의 결함에 관하여 [400]

36장 옷 입는 풍습에 관하여 [403]

37장 소(小) 카토에 관하여 [409]

38장 우리는 같은 일에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한다 [416]

39장 홀로 있음에 관하여 [422]

40장 키케로에 대한 고찰 [442]

41장 자신의 영광을 남과 나누지 않는 것에 관하여 [452]

42장 우리들 사이의 불평등에 관하여 [456]

43장 사치 금지법에 관하여 [473]

44장 잠에 관하여 [477]

45장 드뢰 전투에 관하여 [481]

46장 이름에 관하여 [484]

47장 우리 판단의 불확실성에 관하여 [494]

48장 군마(軍馬)에 관하여 [505]

49장 오래된 관습에 관하여 [519]

50장 데모크리토스와 헤라클레이토스에 관하여 [527]

51장 말의 공허함에 관하여 [533]

52장 고대인의 검소함에 관하여 [ 539]

53장 카이사르의 한마디 [ 541]

54장 쓸데없는 묘기(妙妓)에 관하여 [ 544]

55장 냄새에 관하여 [ 549]

56장 기도에 관하여 [ 553]

57장 나이에 관하여 [ 569]

 

[에세 2]

 

1장 우리 행동의 변덕스러움에 관하여 [011]

2장 주벽(酒癖)에 관하여 [023]

3장 케아섬의 관습에 관하여 [039]

4장 사무는 내일로 [061]

5장 양심에 관하여 [065]

6장 수련에 관하여 [072]

7장 명예포상에 관하여 [090]

8장 자식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에 관하여 [096]

9장 파르티아인의 무장(武裝)에 관하여 [126]

10장 책에 관하여 [131]

11장 잔인성에 관하여 [153]

12장 레몽 스봉을 위한 변호 [177]

13장 타인의 죽음을 판단하기 [460]

14장 우리 정신은 얼마나 스스로를 방해하는가 [470]

15장 우리 욕망은 난관을 만나면 더 커진다 [472]

16장 영광에 관하여 [482]

17장 오만에 관하여 [504]

18장 거짓말하는 것에 관하여 [556]

19장 양심의 자유에 관하여 [564]

20장 우리는 순수한 어떤 것도 맛볼 수 없다 [571]

21장 게으름을 지탄함 [576]

22장 역참(驛站)에 관하여 [583]

23장 나쁜 수단을 좋은 목적에 사용하는 것에 관하여 [586]

24장 로마의 권세에 관하여 [592]

25장 병자를 흉내 내지 말 것 [595]

26장 엄지손가락에 관하여 [599]

27장 비겁함은 잔인의 어머니 [601]

28장 모든 일에는 제때가 있다 [616]

29장 용기에 관하여 [620]

30장 어느 기형아에 관하여 [632]

31장 분노에 관하여 [635]

32장 세네카와 플루타르코스의 변호 [647]

33장 스푸리나의 이야기 [658]

34장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병법에 관한 고찰 [670]

35장 현숙한 아내 세 사람에 관하여 [683]

36장 가장 탁월한 남자들에 관하여 [695]

37장 자식들이 아버지를 닮는 것에 관하여 [708]

 

[에세 3]

 

1장 실리와 도리에 관하여 [011]

2장 후회에 관하여 [037]

3장 세 가지 사귐에 관하여 [060]

4장 기분 전환에 관하여 [080]

5장 베르길리우스의 시 몇 구절에 관하여 [099]

6장 수레에 관하여 [211]

7장 권세의 불편함에 관하여 [241]

8장 대화의 기술에 관하여 [250]

9장 헛됨에 관하여 [294]

10장 자기 의지를 조절하는 것에 관하여 [399]

11장 절름발이에 관하여 [439]

12장 외모에 관하여 [459]

13장 경험에 관하여 [511]

 

부록: 몽테뉴의 서재와 천장의 금언 [609]

몽테뉴 연보 [636]

 

 

 쭉 훑어보면 아시겠지만 우정, 잠, 나이, 책, 냄새, 외모, 기분 전환 등등 일상에서의 수많은 소박한 주제들이 포착되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의 글을 읽다가 보면 '아 이거 나도 이렇게 생각했는데' 또는 '이거 내가 쓴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만큼 공감을 느낄 수 있는 순간들이 많았습니다. 또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하는 깨달음이나, 깊이 있는 생각에 대한 존경의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생각해보면 요즈음의 저는 짧은 글, SNS, 영상 미디어에 익숙해져서 깊이 있게 생각하면서 한 가지 주제에 대해 고찰하며 글로 적어본 일이 별로 없습니다. 저도 어떻게 이렇게 겨우겨우 블로그에 글을 한 두 개씩 써보기는 하지만, 약간의 취미 및 정보 기록 혹은 수익화 블로그에 대한 막연한 동경으로 시작한 일이라 그런지 그토록 깊이 있는 생각을 담은 글이랄 것은 제대로 써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무언가에 대해 깊이 고찰하다 보면 그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 줄 스스로도 몰랐던 생각들을 마주하게 될 때가 많습니다. 생각이 깊어지고 자신의 생각과 마음에 대해 더 잘 알게 되면,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지고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서도 깨닿게 되는 바가 많아집니다. 

 

 제 경우에는 몽테뉴의 글을 읽으며 그의 생각과 관심, 고찰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그 주제에 대한 내 생각은 어떠한지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또는 나도 어떠한 주제에 대해 이토록 깊이 생각해 보고 싶다, 글을 써보고 싶다 하는 의욕을 얻기도 했습니다. 몽테뉴의 사색을 따라가다 보면, 그가 얼마나 자유롭고 또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를 엿볼 수 있어 따뜻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요.

 

 에세는 무척 긴 책이긴 하지만 앞 뒤 연결이 되지 않는 글들이 모여 있는 책이기도 합니다. 곁에 두고 어떤 주제에 대한 누군가의 생각이 궁금할 때, 또는 그 주제에 대한 나의 생각을 되짚어 보고 싶을 때 한 번 씩 읽어봐도 좋고, 답답할 때 아무 페이지나 펼쳐 보고 편한 마음으로 훑어 보기에도 무척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마음은 늘 우리 저 너머로 쓸려 간다, 이 문장은 에세의 주제 중 하나이기도 하지만 그처럼 나의 생각 역시 저 너머로 쓸려가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