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라는 세계'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한 해가 다르게 꾸준히 아래로 아래로 곤두박질 치고 있습니다. 작년이 최저일까 싶었던 합계출산율 0.78도 올해도 무난히 한 번 더 아래로 갱신될 것으로 보여집니다. 맘충이니 노키즈존이니 교사에게의 갑질이니 하는 최근의 삭막한 얘기들을 다 떠나서, 저는 아기들을 무척 좋아하는 편입니다. 작고 귀여운 아기를 보면 저절로 방긋 미소가 지어집니다. 우연히 길에서 아기를 마주하면 보호자 몰래 어떻게든 한 번 아기의 시선을 받아 보려고 이상한 표정도 짓고 멀찍이서 장난도 쳐봅니다. 요새는 아기들을 자주 마주하지 못하는 것이 무척 아쉬울 뿐입니다.
하지만 어린이에 대해서는 어떨까요? 여기서는 어쩐지 고개를 갸웃하게 됩니다. '어린이'라는 단어는 아기보다 더 손이 많이 가고 성가신 일을 일으킬 것 같은 분위기를 풍깁니다. 선입견 탓인지 어른 말을 듣지 않고 속을 썩일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얼마 전까지는 분명히 귀여운 아기였을 어린이들에게 왜 이런 선입견이 생겼는지 모를 일입니다.
아기는 몇 살부터 어린이가 되고, 어린이는 언제까지 어린이인 것일까요? '어린이라는 세계'는 아이들을 가까이에서 들여다본 저자의 시선을 통해 우리가 자세히 살펴보지 않았던 어린이들의 시선, 생각, 세계를 따뜻하게 풀어나가는 책입니다. 어느새 어린이들에 대해 출처 모를 편견을 가지고 있던 저는 이 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반성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생각한 것들을 이 포스팅을 통해 조금씩 정리해겠습니다
1. 도서 및 저자 정보
책의 저자인 김소영 님은 어린이 독서교실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입니다.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고 어린이 책 편집자로 일했던 경험을 살려 여러가지 프로그램을 고안, 어린이 독서교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어린이라는 세계'는 어린이들을 가까이서 만나고, 관찰하고, 소통했던 저자의 경험을 따뜻하고 귀여운 일화를 통해 다정하게 풀어나가는 에세이 도서입니다.
2. 주요 내용
'어린이라는 세계'는 크게 3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별로 인식하지 않고 보아도 상관은 없지만, [곁에 있는 어린이], [어린이와 나], [세상 속의 어린이]라는 구분은 작가의 생각의 흐름을 보여 줍니다. 어른들이 무심코 지나치는 '어린이'라는 존재의 발견, '어린이'와 '내'가 맺어가는 관계, '세상'속에서 '어린이'라는 존재에 대한 고찰이 바로 그것입니다.
작가가 저자와 어린이들과의 에피소드는 정말 작고도 귀여운 것들입니다. 실내에서 양말을 벗고 싶어하는 어린이와 사라진 양말들의 이야기는 조그마한 발에서 땀을 많이 흘리는 어린이와 어디선가 한 번은 본듯한 조그맣게 뭉쳐진 꼬마들의 양말을 떠올리게 합니다. 또 저자는 어린이들에게 존댓말을 사용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한 명의 사람으로 어린이를 존중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혹 내가 처음 보는 어린이에게 무심코 반말을 하거나 한 명의 사람으로서 부족한 대접을 한 적이 있지는 않았는지 스스로를 점검하게 합니다.
저자는 일상의 사소한 사건에 불과한 작은 이야기 하나하나로 어린이들의 세상을 따뜻한 눈으로 지켜보고 있습니다. 어린이들에 대한 포근한 관심과 사랑을 담은 저자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들도 자연스럽게 주위의 어린이들을 발견하고 또 그들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계기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3. 리뷰
영어를 배울 때 인상깊게 느꼈던 표현 중 하나는 '감동'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Moved, Touched 등등으로 표현되는 바로 그 감정 말입니다. 감동이라는 단어의 뜻풀이 자체가 마음(感)이 움직인(動)다는 것이지만, 한자보다는 영어 쪽이 조금 더 이해하기 쉽게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감동의 눈물이라는 단어는 쉽게는 기쁨의 눈물인 것처럼 쓰입니다. 그러나 제대로 뜻풀이를 해보면 조금 전 영어 표현 그대로, 마음이 움직인 데에서 흘러나온 눈물이라는 뜻이 됩니다.
'어떤 것'들은 다른 어떤 것들보다 보다 좀 더 쉽게 사람의 마음을 건드리고 맙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제게는 어쩐지 어린이라는 존재, 그 단어가 그렇습니다. 어린이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항상 마음이 쉽게 움직여 찔끔 눈물이 나고 맙니다. 왜인지 조그맣고 미숙한 존재들이 꼬물꼬물 씩씩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그 자체로 감동을 주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애써 누군가를 감동하게 하려고 애쓰는 것이 아닌데도 저절로 그러한 것이 참 신기합니다.
요즈음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것들을 쉽게 혐오해버리곤 합니다. 그 중 세상을 대하는 것이 아직 서툴고 미숙한 '어린이'들은 자주 혐오의 대상으로 치환됩니다. '어린이라는 세계'는 미시적인 시선으로 다시 언젠가의 옛날처럼, 어린이들이 사실은 이토록 사랑스럽고 소중한 존재였다는 것을 되새겨볼 수 있게 합니다. 그야말로 작고 사랑스러운 존재들을 대하는 너그럽고 넉넉한 마음을 담은 책입니다.
무엇보다 제게 인상깊었던 대목은 바로 이 부분이었습니다.
'실상은 그들의 사랑이 더 크다는 것.'
'때로는 그들의 사랑을 받을 준비가 덜 된 어른들이, 그 가득한 사랑을 그만 가볍게 흘려버리고 마는 것이 아쉽고 또 슬프다.'
아이의 사랑을 받아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이 것이 무엇을 설명하는지 알아챌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나 내 아이가 보내오는 순수하고 지극한 사랑의 크기에 깜짝 놀라본 경험이 있는 저는 너무나 새삼스럽게 이 대목을 몇 번이고 읽고 또 읽고 말았습니다. 한 번 사랑을 보내오기 시작한 아이는 이후 줄곧 조건 없고 맹목적인, 너무나 낯선 형태의 사랑을 쏟아붓기 시작하는 법입니다. 어디서도 받아본 적 없는 이런 새로운 형태의, 아주 과분한 사랑을 받게 된다면 그만 몸 둘 바를 모르게 되는 것입니다.
'금쪽같은 내 새끼'라는 TV 프로그램을 보면 아무리 문제가 있어 보이는 아이도 병적인 원인이 아닌 이상, 결국은 부모의 양육 잘못으로 엇나가게 된 경우가 많습니다. 아이들은 얼마든 몇 배의 사랑을 줄 준비가 되어 있었는데, 제대로 사랑받지 못한 새싹들은 그만 제 사랑을 줄 기회도 얻지 못한 채 비뚤어져 자라고 마는 듯 합니다. 비뚤게 자란 새싹들을 다시 건강하게 자라게 하는데에는 당연히 처음보다 몇 배는 더 큰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커다란 사랑을 되돌려 받을 것인지, 아니면 커다란 숙제를 떠맡게 될 것인지, 그 첫 단추를 꿰는 소임은 근심스럽게도 사랑이 부족한 어른들에게 달려 있습니다.
앞으로 이 사회를 구성하게 될 어린이들.
그들의 조그마한 세계를 엿보는 일은 얼마나 흥미로운 일인가요?
어른들의 가장 가까이에 그들이 깜빡 잊어버리는, 또는 쉽게 간과해버리고 마는 순수한 세계가 공존하고 있습니다.
작고 사랑스러운 어린이들은 순식간에 훌쩍 커버립니다. 짧은, 그래서 더 소중한 그 시간에 빗물처럼 많은 사랑을 주어야 겠습니다. 몇 배로 더 되돌려 받게 될, 더욱 커다란 사랑을.
아무리 많은 사랑을 주어도 찰나였다고 느끼게 될 것입니다.
어린이들의 세계에 언제까지나 반짝이는 사랑을, 더 많은 사랑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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